경제학은 오랫동안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원을 분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응답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묻고자 하는 것은 그 이상입니다. 누구를 위한 효율이며, 어떤 방식의 분배가 정당한가라는 질문입니다. 복지경제학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총생산량의 증대를 넘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학문, 그것이 복지경제학입니다. 파레토 최적에서 출발해 사회후생함수, 롤스와 센의 이론, 그리고 오늘날 복지국가의 정책설계에 이르기까지 복지경제학의 이론적, 철학적 흐름을 조망하고자 합니다.
빌프레도 파레토가 제시한 파레토 최적 개념은 경제학에서 후생의 최소조건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 사람의 후생을 증가시키면서 다른 누구의 후생도 줄이지 않는 상태, 그것이 파레토 효율입니다. 이 조건은 매우 미니멀하며, 동시에 윤리적 판단을 회피합니다. 정의롭다거나 공정하다는 개념 없이도 단순히 비효율만 피하면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문제는, 파레토 효율은 분배의 정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전체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된 사회도 파레토 최적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이미 극도로 불균등한 상태에서 추가 개선이 불가능하다면, 그것 역시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파레토 기준만으로는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사회적 바람직함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경제학이 이윤의 극대화 너머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은, 후생의 집합적 판단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됩니다. 베르그슨-새뮤얼슨 사회후생함수는 개인의 효용을 가중합하는 방식으로 전체 사회의 후생을 정의합니다. 이는 공리주의의 경제학적 표현이며, 제러미 벤담이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정량적으로 접근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공리주의의 고전적 비판에 직면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책이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다수에게 큰 효용을 제공한다면, 그 정책은 사회후생함수상 최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 간 효용의 비교 가능성과 윤리적 경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사회후생함수는 과학적 정밀성을 얻는 대신, 규범적 판단의 풍부함을 희생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존 롤스는 『정의론』(1971)에서 경제학자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던졌습니다. 그는 합리적 개인들이 무지의 장막 뒤에서 사회계약을 맺는다면, 자신이 최악의 조건에 처할 가능성에 대비해 최소 수혜자의 최대화 원칙을 택할 것이라 보았습니다. 이는 단지 평균적 후생이 아니라,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후생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로운 분배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롤스의 이론은 복지국가 정책, 조세제도, 공공의료와 같은 분야에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실증적으로 정량화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사회후생함수와의 통합적 분석이 힘들다는 점에서 실무경제학에서는 제한적으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스의 기여는, 분배에 대한 철학적 기준을 다시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복지경제학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마르티아 센은 후생 개념의 본질적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효용이 아닌, 삶의 기회 즉 역량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그의 삶이 질적으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는가,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보장되었는가가 진정한 후생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센의 이론은 인간개발지수(HDI),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등 현대 국제경제지표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단순한 경제성장 지표보다 복합적 복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개발경제학, 젠더경제학, 교육과 건강 분야에서 역량 접근은 매우 중요한 분석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들은 유럽 복지국가의 설계에 직접 반영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조세 이전 시스템, 독일의 사회보험체계, 네덜란드의 협동조합 기반 의료제도 등은 롤스적 정의론과 센의 역량 접근을 정책화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ESG프레임은 경제적 수익성과 사회적 책임의 접점을 요구하며, 복지경제학과 기업지배구조 간의 새로운 접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탄소배출권 시장이나, 사회적 가치 기반 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 회계 등은 전통적 시장경제를 넘어선 윤리적 경제의 모색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경제학은 수익성과 공공선, 효율성과 형평성이라는 이중 목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한 것입니다.
복지경제학은 효율성과 경쟁, 성장을 강조하는 주류경제학의 궤도 위에서 이탈한 듯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을 완성시키는 윤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경제적이라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수익을 계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녕을 설계하는 통찰일 수 있습니다. 파레토에서 시작된 경제적 효율의 논의는, 롤스와 센을 거치며 윤리적 감수성과 인간 존엄의 문제로 확장되었고, 오늘날 ESG와 결합하여 실천적 정책 설계의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복지경제학은 숫자를 넘어, 인간의 가능성과 존엄을 중심에 두는 경제학이며, 그것은 단지 하나의 학파가 아니라, 경제학이 미래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경제학이 다시 사람을 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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