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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책, 기본소득 정책, 경제 이야기

경제

by 경제학자 양나희 2025. 4. 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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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 복지국가의 미래는 연관성이 많습니다. “복지란 돈을 주는 문제가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 말이 더는 비유가 아닌 시대입니다. 오늘날 복지정책의 방향성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패턴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행동경제학은 그 실마리를 쥐고 있는 도구이자, 새로운 국가 설계의 언어입니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한국보다 한발 앞서 저출산 사회의 위기를 체감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현금 지원만으로는 출산율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경제 정책의 무게추는 행동을 유도하는 구조적 설계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는 정부 개입의 정당성과 한계를 동시에 가진다
경제는 정부 개입의 정당성과 한계를 동시에 가진다

행동경제학과 복지국가의 미래

스웨덴은 유연성과 선택권을 통한 넛지형 육아정책으로 유명합니다. 육아휴직은 부모 양측이 총 480일 사용 가능하고 각 부모가 최소 90일씩 사용하지 않으면 휴가 일부는 사라집니다. 이것은 상실회피를 활용한 행동경제학적 장치입니다. 아버지들이 육아를 기회비용으로만 계산할 경우, 참여율이 낮아집니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잃게 되는 제도로 설계할 경우, 사람들은 행동에 나섭니다. 실제로 이 조항 도입 이후, 아빠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40% 이상 급증했습니다.

프랑스는 보육의 70% 이상을 국가 혹은 지방정부가 직접 운영합니다. 부모가 아이 맡길 곳이 없다는 이유로 출산을 미루는 걸 사전에 차단한 구조입니다. 출산 후에도 일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과 국가가 동행한다는 정서적 확신이 생깁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조건을 정교하게 설계한 결과입니다.

한국의 경우

한국은 아직 전국 단위 기본소득 정책을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지방정부 단위의 실험적 기본소득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습니다. 이 실험들은 단지 재정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 행태, 사회적 태도, 심리적 안정감까지 포함해 행동경제학적으로 관찰되어 왔습니다. 이재명 지사 재임 시절 도입된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분기별로 25만원, 100만원이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제도였습니다. 핵심 포인트는 조건 없이 모든 청년에게 지급하고 현금이 아니라 지역화폐로 사용하며 사용처를 제한했습니다. 이는 자금의 역외 유출을 막는 동시에, 소비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역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집단을 줄이고 선택과잉을 방지해 즉각적 소비를 유도 합니다. 분기별 지급은 지속적 보상 구조를 만들어 일시적 과소비보다 소비의 패턴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조건 없는 지급은 자존감과 효능감을 회복시키는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하여 시혜가 아니라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참여도와 만족도 모두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해당 정책은 단순히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 것을 넘어서 청년의 삶의 통제감 회복, 자존감 향상, 참여 의식 고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한국의 고창군, 전남 해남군 등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이 지역들은 인구소멸 위험이 있는 농촌 지역으로, 기본소득을 통해 정주 인센티브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해남군의 경우 일정 기간 이상 거주 시 연간 60만 원 이상의 지역화폐를 지급하였으며 대상은 신규 이주자와 청년 농업인을 우대 지급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실험 이후 청년 귀촌률이 소폭 증가하였고 지역 소상공인 소비 증가 효과가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정책을 통해 떠나는 경제를 머무는 경제로 전환하려는 시도이며, 기본소득이 경제와 정주 구조에 미치는 행동적 파급력을 실험한 결과였습니다.

경제와 복지

과거의 복지는 투입과 산출의 문제로 요약되었습니다. 예산을 얼마나 투입하고, 몇 명이 수혜를 받았는가. 그러나 지금 복지는 다릅니다. 복지는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사람은 그 설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중심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전에는 더 많이 주면 더 많이 낳겠지라는 단순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 정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지는가?, 참여하려는 심리적 문턱은 낮은가?,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설계인가? 를 생각합니다. 이러듯 행동 경제학을 이해하는 설계자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복지정책의 효과를 결정하는 건 인간이 정책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다시 말해 인지적 구조와 선택의 맥락이야말로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정책학과 경제학의 구조적 결핍을 보완합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개인을 합리적 행위자로 간주하며, 정보에 기반한 최적화된 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인지적 자원이 제한되며, 습관, 정서, 편향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는 정책 설계자에게 정태적 효용 극대화 모형을 넘어서, 인간의 실제 행동을 설명하는 동태적이고 심리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정책의 명시적 보상보다 인지적 설계가 강력한 행동 변화 유도 요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지급할 때, 그 심리적 신호는 당신은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메시지로 작용, 노동동기나 사회참여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는 단순한 소비 증대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사회적 자본의 재형성과 행위자의 자기효능감 상승이라는 비시장적 긍정 효과까지 포함합니다.

마치며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 이론은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다는 구조를 제안합니다. 이제 정책 설계자는 단순히 재정과 제도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디폴트 설정, 프레이밍, 선택 집합의 구성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스웨덴의 육아휴직 정책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상실되는 구조는 참여 유인을 극대화합니다. 프랑스의 보육 시스템은 인지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자동화된 선택 시스템의 효과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조는 정책 수혜자의 심리적 전환점을 자극하여, 자발성과 참여를 유도합니다.

 

행동경제학은 실험경제학, 필드실험, 랜덤화 통제시험(RCT)과 결합되어 실증적으로 검증 가능한 정책 설계를 가능케 합니다. 예컨대 미국 건강보험의 문자 리마인더 실험은 RCT를 통해 간단한 메시지 한 줄이 신청률을 23% 이상 향상시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정책은 이론의 직관에서 데이터 기반의 설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재정 건전성만이 아니라, 국민의 참여 유도, 제도 신뢰, 자율성에 기반한 수용성에 달려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행동경제학은 제도 설계와 국민 행동 사이의 다리 역할을 수행합니다. 단지 무엇을 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주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 제도를 인식하고 반응하는가가 핵심 변수로 부상합니다.

 

복지는 행정의 영역을 넘어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데이터과학이 교차하는 총체적 설계의 문제입니다. 그 설계는 숫자보다도 메시지에 민감하고, 제도보다도 신뢰에 기반하며, 행위보다도 감정의 회로 속에서 작동합니다. 정책은 충분한가? 라는 물음은 이제, 정책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가? 로 진화해야 합니다. 행동경제학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경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행동과 관계의 축적이며 복지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인간적 설계의 산물이라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복지국가를 설계하는 시대가 아니라, 행동을 설계하는 복지국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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