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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의 불균형, 경제 국가 불균형, 경제 이야기

경제

by 경제학자 양나희 2025. 5. 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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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는 단어는 자칫하면 수치의 냉정함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국가 간의 불균형, 특히 경상수지의 지속적인 흑자와 적자는 단지 효율성과 경쟁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경제 국가로서의 정책 선택과 구조적 위치, 그리고 국제 질서가 형성한 경로의존성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그런 점에서 경상수지 조정은 단순한 경제적 압력이나 자동적인 환율 조정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그것은 국제적인 규범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누가 얼마나, 언제 조정해야 하며, 그 조정은 어떤 원칙과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는 우리가 마주한 정치 경제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시장과 정부의 조화로운 공존의 필요성
시장과 정부의 조화로운 공존의 필요성

경제 국가 불균형

시간을 1944년 브레튼우즈로 되돌려 전후 경제질서 수립을 위해 모인 그 회의에서, 케인스는 아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흑자국과 적자국 양측 모두에게 조정의 책임을 부여하는 국제청산동맹이라는 제도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불균형은 단지 적자국의 잘못이 아니라, 흑자국의 과도한 축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흑자국도 스스로 조정해야 한다.” 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획은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순흑자국이자 금 보유국이었던 미국은, 조정 책임의 분산을 거부했고, 결국 IMF 체제는 적자국에 대한 감시와 구조조정의 압박에 초점을 맞추는 구조로 굳어졌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흑자국은 침묵하고, 적자국만이 고통을 감내하는 불균형의 규범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무언의 규칙. 바로 그것이 국제 경제 질서를 지배해온 비가시적 헌법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세계 경제는 더 이상 20세기의 프레임 안에 있지 않습니다. 자본은 초국적이며, 공급망은 실핏줄처럼 얽혀 있고, 통화는 디지털로 바뀌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상수지 불균형은 단순한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 간 규범의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 왜곡입니다. 무역불균형이 심화될 때마다 각국은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무역 상대국에 비난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제 규범은 침묵합니다. IMF는 여전히 감시에 집중하고 있고, WTO는 분쟁 해결보다는 무력한 협상 테이블에 가까우며, G20은 공동성명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흑자국은 아무런 제재 없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가?, 왜 경상수지 흑자에 과잉 저축이라는 중성적 이름이 붙고, 적자에는 방만한 소비라는 도덕적 비난이 가해지는가? 이 불균형한 언어의 규범조차, 국제경제의 비대칭성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균형의 재설계

사실 가능한 대안을 가지고 현재 국제사회는 점진적이지만 의미 있는 규범 재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흐름은 IMF의 외환보유고 과잉 적립에 대한 지표화입니다. IMF는 특정 국가의 외환보유액이 자국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지속적인 경상흑자를 동반할 경우 이를 불균형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서서히 강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흑자국에도 거시정책 조정 권고를 내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또 하나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된 조정의 정치화입니다. 탄소세 도입, 녹색산업 보조금 등은 경상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 과정에서 무역구조가 변화하고 자본 흐름도 달라집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국제 규범은 더 이상 단일 경제 논리가 아니라, 다층적인 가치를 고려하는 새로운 틀로의 확장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G20을 중심으로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한 공동 원칙을 수립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고, UNCTAD나 세계은행 내부에서도 지속가능성 지표에 기반한 무역 및 자본흐름의 재설계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 흑자국의 책임

흑자국은 더 이상 자본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 자본을 통해 세계 경제의 조정자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접근해야합니다. 경제는 단지 생산과 소비의 흐름이 아니라, 책임의 순환이기도 합니다. 국가 간 불균형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 불균형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는 정치의 문제이며, 국제 규범의 영역입니다. 이제 경제적 국익만을 내세우는 시대는 끝나고, 글로벌 거버넌스 속에서의 역할 분담과 책임 정립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외면한 채, 흑자국이 계속해서 조정의 외곽에만 머무른다면, 결국 다음 위기의 중심은 불균형을 조정하지 못한 정치적 침묵에서 비롯될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국제 규범은 헌법이 아니기에 강제성도 없고, 처벌도 없습니다. 하지만 규범은 방향입니다. 세계 경제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약속된 미래의 형태이자, 불확실한 질서 속에서 우리가 함께 합의해가는 나침반입니다. 흑자국과 적자국, 자본 수출국과 수입국 모두가 그 규범 안에서 일방적 경쟁자가 아닌, 공동 조정자로 자리매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불균형의 늪을 건너,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세계경제의 언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책임, 신뢰, 협력. 이 세 가지는 시장의 가격표에는 붙어있지 않지만,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지속적인 자원입니다. 경제는 계산의 산물이자, 동시에 합의의 결과물입니다. 어떤 시스템도 신뢰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듯, 국가 간 경제 질서도 공정하다는 믿음이 없다면 균형은 영원히 요원한 신기루일 뿐입니다. 우리가 국제 규범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더 많은 이들이 배제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불균형을 넘는 길은, 결국 함께 조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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