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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 기축통화의 역설, 경제 이야기

경제

by 경제학자 양나희 2025. 5. 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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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돈의 개념에서 벗어나 권력이고, 약속이며, 전 지구적 질서를 떠받치는 상징적 수단입니다.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 이후, 미국 달러는 국제 결제의 중심이 되었고, 그 지위는 반세기가 넘도록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축통화의 세계적 경제 위상은 단지 국제 결제의 편의성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경상수지와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적 경제 불균형의 역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경제 기축통화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고 핵심적으로 전달하면 흑자를 유지하면 안된다라는 말이 더 명확한 핵심이기도 합니다.

21세기 국제 경제 규범- 보이지 않는 손 vs. 책임의 손
21세기 국제 경제 규범- 보이지 않는 손 vs. 책임의 손

기축통화와 경상수지

벨기에 출신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은 1960년대 초, 기축통화국이 지닌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트리핀 딜레마는 다음과 같은 간단하지만 깊은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기축통화는 국제 거래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합니다. , 다른 나라들이 달러를 원하기 때문에, 미국은 지속적으로 달러를 세계에 뿌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 달러 공급이 대부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 미국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 일부러 무역수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미국이 균형 혹은 흑자 재정을 목표로 한다면? 세계는 곧 달러 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국제 거래는 경색되며, 글로벌 유동성 위기가 발생합니다. 경제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메커니즘이다. 패권을 유지하려면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흑자를 추구하면 패권이 흔들립니다. 이것이 기축통화의 역설이며, 미국 경제의 유일무이한 패시브 액션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나쁜 것이라고 보기에는 억울합니다. 오히려 세계경제를 유지하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미국이 수입을 늘리고 자본을 외부에 공급하지 않았다면, 신흥국의 성장, 글로벌 무역 확대, 국제금융의 발전은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구조는 무한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이미 만성화되었고, 쌓여가는 외채는 결국 달러 시스템의 신뢰를 조금씩 잠식해갑니다. 무역적자가 계속되면 달러의 구매력은 약해지고, 달러가 약해지면 기축통화로서의 신뢰도는 점차 흔들립니다.
달러 패권의 지속 가능성은, 미국의 정치적 신뢰와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정성이 확대될 때마다, 탈달러화라는 유령이 다시 나타납니다. 중국, 러시아, 브릭스 국가들이 외환보유고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중국 위안화나 디지털 유로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축통화국 외 국가의 대응

문제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 비기축통화국의 반응입니다. 기축통화국은 적자를 통해 세계에 자본을 공급하는 반면, 비기축통화국은 이를 수용하거나, 거부하거나, 역으로 경상흑자를 과도하게 축적하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전략이 수출 주도형 성장 모델입니다. 중국, 독일, 일본 같은 국가들은 대외 부문에서 경상흑자를 확보하며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은 필연적으로 글로벌 불균형을 초래하며, 기축통화국의 적자와 맞물려 세계경제 전체의 구조적 취약성을 확대시킵니다. 여기서 다시, 경상수지 조정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세계경제는 지금, 기축통화국의 적자와 비기축통화국의 흑자가 만들어내는 비대칭적 균형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서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세계 경제의 순환

흥미롭게도 이 모든 논의가 단순한 역사적 고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히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CBDC, 즉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현실화되면서 기축통화의 메커니즘 자체가 전환기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만약 디지털 위안화가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결제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이는 달러 시스템의 위협이자, 경상수지·자본수지 메커니즘 전반의 재설계를 촉발할 것입니다. 또한 글로벌 탄소세 체계, 녹색산업 보조금, 탄소 국경 조정 등 환경을 고려한 무역 질서가 본격화되면, 단순한 수지 계산을 넘어서는 가치 기반의 경제 교환 체계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란 단지 세계가 사용하는 공용화폐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세계 경제의 순환을 유지하는 숨겨진 심장박동이며, 그 역할을 맡은 국가는 단순한 중심국이 아니라, 사실상 글로벌 불균형을 감내하는 대가로 세계적 조정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달러화가 전 지구적 유동성의 척추 역할을 하며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세계의 자산 축적과 소비를 가능케 했다는 사실은, 기축통화국이 가진 쓸 수 있는 권리와 동시에 감내해야 할 희생이 맞물린 구조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단순히 무역수지 흑자냐 적자냐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흑자국은 언제나 선한 경제를 하고 있고, 적자국은 언제나 무절제하다는 이분법적 통념은 오히려 국제질서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기축통화와 경상수지의 상호작용은, 국가 간 책임 분담의 정교한 설계이자, 불균형을 통한 균형 추구라는 역설의 메커니즘입니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이 유지되기 위해선, 기축통화국도, 비기축통화국도 모두 일방적 승자가 아닌 공동의 조율자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마치며

기축통화의 새로운 질서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 그 질서는 과거와 달리, 보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균형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한 통화체계 개편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제 통화질서의 재설계는, 곧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정립을 의미합니다. 각국이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를 넘어, 글로벌 공공재로서의 통화 질서를 함께 설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불균형의 구조를 넘어서는 진짜 균형 있는 세계 경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그 특권은 절대로 무제한이 아니며, 무책임한 소비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높은 거버넌스 기준, 더 예민한 조정 감각, 그리고 더 강한 투명성의 의무를 요구받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과거처럼 미국 중심의 단극 기축통화 체제가 지속될 수 있을지, 혹은 위안화나 디지털 통화들이 새로운 균형의 대안을 만들 수 있을지, 그 정답은 어느 한 나라의 선택이 아니라, 세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이 논의는 우리 모두의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기축통화는 외환보유고의 문제일 뿐 아니라, 글로벌 복지, 무역안정, 금융위기 방지, 기후대응 자금조달 등 21세기 경제적 정의의 구조와 직결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무엇이 진짜 공정한 조정이고, 누가 그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질서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튼튼하고 더 평화로운 세계 경제를 물려줄 수 있을지. 그 길의 시작은 언제나 같습니다. 불균형을 방치하지 않는 정치적 용기, 그리고 특권의 자리에 서 있을수록 더 많은 책임을 감수하려는 윤리적 결단. 기축통화는 화폐의 문제이면서,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신뢰와 정의, 그리고 공동체적 미래에 대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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