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국인 미국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동시에 안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뉴스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쌍둥이 적자는 단순한 경제 난맥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세계경제가 굴러가기 위한 핵심 부품처럼 작동하고 있는 기이한 구조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제 불균형이 어떻게 유지되고, 또 왜 흑자국들이 이 구조를 기꺼이 떠받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달러의 지위, 글로벌 유동성 수요, 그리고 적자의 유혹이라는 경제사적 맥락을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합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적자는 글로벌 자본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심축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기축통화국의 특권이 작동합니다. 달러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국제 무역의 결제통화, 금융시장의 기준통화로 사용됩니다. 이 말은 곧, 세계는 달러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적자를 내지 않으면, 달러는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적자는 글로벌 경제의 윤활유인 셈입니다. 이게 바로 쌍둥이 적자의 역설입니다. 적자임에도 지배하고, 빚을 지면서도 금융을 통제하는 구조. 이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독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꾸준히 경상수지 흑자를 누리고 있는 흑자국의 입장은 어떻할까요? 하지만 이들은 그 흑자를 달러 자산으로 다시 미국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선순환을 완성시킵니다. 간단하게 이해하면 달러 자산만큼 안전하고, 유동적이며, 규모 있는 금융 시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자국 통화 강세를 막고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중앙은행들의 전략도 여기에 맞물립니다. 결국 흑자국들은 미국의 적자 덕에 수출하고, 그 수익을 다시 미국에 예치하면서 글로벌 불균형의 순환 고리를 자발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시점에서 흑자국들의 전략적 선택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유지되어야만 자신들의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적자 구조가 지속 불가능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모순 속에서 흑자국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20년간 제조업 기반의 수출 확대를 통해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고를 축적해왔습니다. 이런 무역흑자의 상당 부분은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에서 비롯되었고, 흑자로 발생한 달러는 미 국채 매입에 재투자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과잉투자, 부동산 버블, 소비 부진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내수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전환 속도는 더디고, 수출은 여전히 미국 수요에 의존적인 상태입니다. 미국이 긴축을 단행하고 무역장벽을 높이는 순간,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는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며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수출대국으로 불리는 독일은 GDP 대비 수출 비중이 50%를 넘는 대표적 대외의존형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심축은 고급 제조업인 자동차, 기계, 화학이며, 주요 수출 대상국은 미국과 중국입니다. 독일은 유로존의 통화정책을 단독으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외환시장 개입이라는 전통적 정책수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상흑자가 누적될수록 자금은 자연스럽게 미국 금융자산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이 장기화되거나 보호무역이 강화되면, 독일은 통화정책도, 재정정책도 손에 쥐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또 다른 맥락에서 이 딜레마를 마주합니다. 장기적인 저성장과 인구 감소로 내수 확장은 한계에 봉착했고, 국민 저축률은 높지만, 생산적 투자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은 해외투자, 특히 미국 국채를 통해 자본을 순환시키는 방식에 의존해 왔습니다. 일본은행의 극단적 저금리 정책도, 엔화 강세를 방지하고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일환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미국이 재정적자 축소에 나서며 달러 공급을 줄이기 시작하면, 일본은 마땅한 투자 대안을 찾기 어려워지고, 금융소득 중심의 경제모델도 불안정해집니다.
이러한 경제 구조 속에서 흑자국들은 하나의 공통된 딜레마에 봉착합니다. 미국이 계속해서 적자를 유지해줘야 자신들도 수출을 유지하고 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적자 자체가 미국 내부에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점점 더 큰 저항에 부딪히고 있으며, 그 균형추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즉, 흑자국들은 미국을 향해 “당신들의 소비와 적자가 우리 생존의 전제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적자가 너무 커지면 우리 모두 함께 침몰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속으로 우려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경제는 지금 불균형을 통해 유지되는 균형이라는 모순된 구조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습니다. 정치적 의지, 글로벌 리더십, 금융 시스템의 제도적 개편 여부에 따라, 이 공범의 동맹은 새로운 질서로 전환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갑작스러운 불안정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경제는 균형이 아니라 불균형의 관리라는 묘한 합의 위에 서 있습니다. 미국은 적자를 통해 통화패권을 유지하고, 흑자국들은 그 적자에 투자함으로써 수출 기반을 지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인구구조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기술 탈동조화 등 새로운 변수가 격해지면서 이 구조의 지속 가능성은 점점 더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의 쌍둥이 적자 구조가 스스로 붕괴되는가, 혹은 흑자국들이 새로운 대안을 구축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국제 금융 규범이 이 구조를 재설계하는가, 우리는 이 모든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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